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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조각.도예을 찾아서

이영수화가 보석의 기가 살아 숨쉬는 오방색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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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수 동양화가,단국대 명예교수(2013년)

 

 

 

 

 

보석의 기가 살아 숨쉬는 오방색의 세계  작가의 말:우리는 흔히 귀하소 뛰어난 것을 비유해서 보석과 같다고 말합니다.이렇게 보석은 시대를 초월하며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흠모를 받고 있는 소중한 자연의 선물입니다.나의 작품들은 보석분말로 제작된 작품이며 석채화는 아름다운 발광성과 견고한 표면질감이 마치 작은 벽화를 연상 시키며 석채는 부드러운 분채와는 달리 다른 단단한 보석 석질(石質)의 표면질감과 광채를 갖는 강하고 눈부신 색상미의 화면을 창출합니다. 우주만물은 다섯가지 원소로 형성됐다고 하는 오행설(五行說)에 바탕을 두고 즉,청색은 육성의 덕을 맡는다는 목(木)에 속하며 방위는 동쪽이고 계절은 봄, 적색은 변화의 덕인 화(火)에 속하여 방위는 남쪽이고 계절은 여름,황색은 생출의 덕인 토(土)에 속하며 방위는 중앙이고 사계절의 주가 되며,백색은 간금(刊禁)의 덕 금(金)에 속하며 방위는 서쪽이고 계절은 가을,흑색은 임양(任養)의 덕인 수(水)에 속하며 방위는 북쪽이고 계절은 겨울에 해당합니다.오행의 관계에는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이 있어 예컨대 남여가 상생으로 화합하면 행복하고 상극으로 만나면 재화(災禍)가 있다고 하며 또한 작품에서는 기(氣)가 분출돼 기력과 활기가 넘치는 삶과 또한 수맥을 통제하며 루비분말(붉은색),공작석 분말(초록색),수정분말(흰색)등의 원석(原石),암채(岩彩)분말로 제작돼 원색이 주는 현란함에 안전성을 가하고 여백을 남겨두어 여운(餘韻)의 영상을 간직한 작품세계입니다.

 

 

 

 

 

 

 

 

 

 

 

고구려 고분벽화 계승한 이영수(李寧秀)의 "암채화" 그 동화적 세계의 비밀

 

서울 은평구 응암1동. 동양화가 이영수 단국대 명예교수가 이십여 년을 넘게 터를 잡고 살아온 곳이다.5척 단신이지만 그가 내뿜는 에너지는 여전했다.여전하다고 말하는 것은,1990년대 중반 교수신문이 기획했던 "한국지성의 표상전"운영위원으로 참여했을 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뜨이다.이 교수는 3층짜리 주택 하나를 통째로 사용하고 있었다.지하실부터 옥탑방까지 곳곳에 그의 삶과 예술세계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의 말로는 그는 한국 화단에 "끗발"을 날리던 작가는 아니었다.스스로 말해왔듯 그는 "끗발은 없다".그러나 서운해 하지는 않는다.나는 끗발로 그림을 그리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확신하고 있었다.그런 그를 두고 화단은 "암채화(석채화)를 그리는 화가라고 명명하고 있지만,이 교수가 처음부터 원석 암채화를 그린 것은 아니었다.

 

1960년대에는 반추상적인 그림을 그렸다.소나,말,염소,잠자리,비둘기등 삶의 주변에 놓여 있는 작은 생명체에게 집중하기도 했다."선과 선이 교처해 반복되는 데서 오는 중첩(重疊)의 효과을 살리고,다시 채색으로 불필요한 선은 지우고 살리는 작업이었다.그 뒤 1970년대 초반에는 추상계열의 그림ㅇ로 나어갔다.화면을 롤러나 골판지 등으로 문지르고 찍어내고 또는 닦아내 다시 칠하는 실험적인 작품으로,먹과 아교를 중첩해 바르는 어두운 화면이 주종을 이뤘다.작품의 소재는 시골이나 밭두렁에 노니는 염소나 벌거벗는 아이,개구리,홍학,저녁노을,늪이나 웅덩이 등을 많이 다뤘다.충남 한산 시골 출신이라는 근원적 향수감과 그의 신앙(그의 작업실 한곳에3대째 전해지는 철불상이 놓여있다.그는 이 불상을 지나칠 때마다 합장 반배하곤 했다)이 배경으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화가 이영수가 지금까지 깊이 빠져있는 석채화의 세계에 나아간 것은 언제일까.그는 그계기를 1974년쯤으로 잡고있다.1974년 일본 도쿄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귀국한 뒤부터 "석채화가 나에게 가장 알맞은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말한다.사실 석채화는 재료 구입이나 제작과정이 까다롭고 불편하다는 점에서 기피되고 있었던 영역이었다.그는 이렇게 말한다."말로는 간단한 것 같지만 암채화 제작에 드는 기법상의 어려움은 하루 이틀에 얻어질수 있는 것이 아니다.종이 배접과정에서도 순지(純紙)르 여러 겹 바르는 과정에서 부터 기름기를 제거한 썩힌 풀로 마무리하기까지 제작 전과정에 기울이는 정성은 인내가 필요하다."색채(色彩)는 화공색채(化工色彩)나 봉채나 분채(紛彩)를 절대로 쓰지 않는다.봉채나 분채을 사용할 경우에 시간이 자나면 변색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언제나 원석 암채를 쓰고 있다.

 

원석 암채가 색의 변색을 막아주긴 하지만,한 가지 경계해야 할 부분이 있다.원석이 뿜어내는 "색의 현란함"이다.그는 이 색의 현란함을 막기 위해 이미 채색된 색 위에 다시 묵(墨)을 배이게 한다.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현란한 원석의 색감에 안정성을 기하고,여백을 남겨 두어 여운의 영상을 남기는 미적 효과를 계산해냈다.그의 작품이 질료들이 뿜어내는 강렬한 색감을 제어하고,동양적 전통의 여운을 이어갈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강렬한 원석 암채를 질료로 채택했지만,그의 시선이 가닿는 곶은 낮고 연약하고, 매끄러운 세계다.그가 "나는 작품에 있어서 대상물의 원천을 우리 고유의 민화나 불화혹은 흉배(胸背)등에서 이미지를 발굴해 내거나,강렬한 향수(鄕愁)를 일깨워 주는 어린 시절의 농촌생활의 기억에서 모티브를 채집하기도 한다.라고 말한 대목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있다.이런 세계는 도시 생활의 긴장감과 가열된 삶의 피로를 해소할수 있는 청량제 같은 소재를 제공한다.그는 여기에 동화적 요소를 가미시키고,때로는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거하면서 시적 흥취를 풀어 놓기도 한다.그의 작품에서 "동화적 요소"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소년 같은 천진스러움과 장난기를 잃지 않고 있는 그의 본성 탓이기도 하다.

 

오래전 미술평론가 이구열은 그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그의 작품들은 주체성이 더욱 명쾌하게 단순화되거나 자유로운 생략을 가져오면서,철록 색조의 산과 노랑색 꾀꼴새 또는 파랑색 물색,투명한 수면과 초록색 수초며,연꽃 그리고 강렬한 발강색조 속의 윤곽만을 드러내는 어린이의 얼굴과 커다란 잉어 등을 영원한 표상과 생명감으로 내재시킨다."동심적 향토경:"미묘한 민화풍의 현대적 화면""사색적 혹은 철학적 자연관과 시심경(詩心境)을 내포하는 조형성"을 읽어낸 이구열은 이영수의 채색화 집착과 근래의 한층 뚜렷한 독자적내면은 각별한 평가와 주목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투쟁적인 자기 확신과 신념으로 채색화에 전념해  온 뚜렷한 중진작가이다"라고 평가했다.

 

우호적인 평가는 평론가 박용숙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이영수의 채색화가 고구려 고분벽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본 박용숙은 이영수가 잇고 있는 채색정신의 정립에 주목했다.고분벽화가 인물화와 풍경으로 분기된다면,이영수가 잇고 있는 세계는 후자의"풍경"이라는 지적이다.그것의 구체적 표현이 바로 십장생도와 같은 궁중비젼의 그림이나 민화다.이릉 두고 박용숙은 "수묵이 곁들여진최근의 그의 민화적인 작품들은 수묵이 주인이 아니라 채색이 주인이고 수묵은 그 수식적(修飾的)인 한 요인에 불과하다.종요한 것은 민화와 십장생의 모티브가 다양하게 전개된다는 점인데,이 점은 고분시대의 이상주의적인 자연관의 재흥(再興)을 뜻한다"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구열이 읽어낸 동심적 향토경,미묘한 민화풍의 현대적 화면,사색적 자연관과 시심경,은 어쩌면 이영수가 삶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기본 방식인 익살과 여유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그는 1978년 경남대 교수직을 그만두고 작가로 살겠다고 모질게 각오하고 서울로 와서 10여년을 작품에만 몰두했다."나의 회화가 가지는 큰 가치는 민화를 통해 한국인의 정신세계을 가늠하고,그 표현의 산물인 겨례그림으로서 예술작품을 해석하고 그것을 현대적 시각으로 변용,형상화하는 데 있다"라고 그가 자기확신에 이를 수 있었던 것도 이 십년의 공력 때문일 게다.최근에는 한국민화를 모아 30권짜리 전집으로 묶어내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정년는 있어도 퇴임은 없다"는 말처럼 정년을 마친 전직 교수이자 명예교수지만,그는 여전히 젊은 청년이고 소년이다.

 

 

□.이영수 명예교수는 홍익대 미술대학(동양화전공)을 졸업하고 연세대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러시아 하바로스코프 국립사범대학 명예학 박사이며,경남대,부산대,홍익대,등에서 가르쳤다.단국대 예술대학장과 산업디자인 대학원장을 역임했다.현재 단국대 명예교수로 있으며,저서로는"한국민화전집(전2권),"현대채색화 대전(전3권),"미술해부도"(전2권),"이영수와 그의예술"등 다수가 있다.

 

 

참고문헌:교수신문 창간 20주년(1992~2012년) 창간특별 기고 중에서  옮긴이:다큰아이

 

 

감사합니다.

 

 

 

 

글:다큰아이